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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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I분야 중에서 특히 관심이 있는 분야가 무엇인가요?” 벌써 KIXLAB에서 연구 인턴으로 일한지도 4개월이 넘었는데, 작년 8월 인턴을 뽑는 면접 때 받은 질문 중 하나가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잠깐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꽤 잘했던 것 같다. 스스로 잘했다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학창시절에도 주변에서 늘 ‘그림 잘 그린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5살 때부터 집안을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으로 도배하는 재능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는 유치원때부터 거의 매주 나와 내 동생의 손을 잡고 (마치 나들이 가듯이) 새로운 미술대회, 사생대회들을 나갔다. 대회를 많이 나간 만큼, 집에는 상장도 하루가 멀다하고 늘어갔고, 거의 매주 새로운 상을 받아오는 나는 초등학교 시절 ‘상장 수집 로봇’과 같은 별명으로 친구들이 부르곤 하는 유명 인사였다.

늘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즐기던 나는 우연히 로봇을 통해서 코딩을 접했고, 초등학교 3학년에 처음으로 C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코딩교육이 공교육으로 도입되는 시기도 아니었을 2000년대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고 정보올림피아드 수상을 했다. 로봇영재로 YTN 사이언스에서 취재를 왔을 때 프로그래밍이 재밌는 이유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작동하는 것을 만드는게 재밌다”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재미에서 가상(소프트웨어)으로 만드는 재미를 알았던 것일까? 어째뜬 나는 늘 존경하는 인물을 쓰는 칸에 엄마 아빠, 그리고 빌 게이츠를 쓰던 나는 프로그래머라는 꿈을 가지고 자랐다.

고등학생 과제연구할 때 부터 모니터는 다다익선(?)임을 알았던 것 같은 나였나보다

고등학생 시절 정보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아 Andrew Ng의 머신러닝 강좌를 보기도 하고, 그 당시 윈도우로 제대로 돌리기가 힘들어서 선생님의 맥북을 빌려(어쩌면 지금 내 애플농장의 계기였을수도…) TensorFlow로 선형회귀를 이용한 청소년기 우울분석이라는 제목의 논문도 써봤다. 때마침 알파고가 뉴스를 도배하며 더욱 사람들의 딥러닝에 대한 인식이 퍼지는 시기여서 머신러닝을 쭉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입시를 앞두고 지원서에 나의 진로에 대해서 적으려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나는 막연히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고만 생각해왔지,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 앞에서 3분 발표 주제로 내가 UI & UX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했던게 생각이 났다. 보통 재밌는 주제로 자신의 취미나 여행 등에 대해서 자유롭게 발표하는 자리였는데, 그 와중에 진지하게 그런 발표를 한게 조금은 우습지만 나름 내가 흥미롭게 여기던것을 발표하고자 했던 마음이었다. HCI(Human-Computer Interaction)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기였던 것 같다.

KAIST에 진학하고서도 다른 동기들이 학과선택을 두고(KAIST는 1학년 무학과이기 때문에 2학년 진학시에 학과를 선택한다) 고민할 때에도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전산학부와 산업디자인을 택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 두 학과인 동시에 User centered design을 지향하는 HCI 학문 특성상 각각의 전공수업에서 많이 배우고,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나의 과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만큼 어렸을때부터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정말 운이 좋게도 아직 그 꿈을 잃지 않은 채 나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던 것은 어쩌면 시대와 환경의 도움도 있었던 것 같다. 알파고, 4차 산업혁명, IoT 등 컴퓨터가 없는 일상은 상상도 할 수 없고 딥러닝이 인간의 자리를 하나둘 씩 대체하기 시작하는 현실에서 프로그래머, 특히 인공지능 관련 개발자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인 상황이다. 비단 KAIST 전산학부 뿐만 아니라도 컴퓨터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컴퓨터 비전공자도 코딩 쯤은 필수로 배워야 할 것 분위기 탓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꿈을 어렸을 때부터 가진 것에 감사하기도 하면서 가끔은 위기를 느끼기도 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도 적어도 나의 생각이 크게 바뀐 적은 없었고, 이를 점점 좁히고 깊게 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서두에서 말한 질문은 이제 막 대학원을 컨택하려 하는 학부생에게는 꽤 가혹한 질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모를 학부 3학년에게 얼마나 자세한 speciality가 있기를 기대한 것일까? 나름 진로가 확고했고, 남들보다 일찍이 방향을 잡았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었고 내심 당황했다. 물론 압박면접이 아니고 부담을 주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순전히 내가 더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방향이 있는지, 내가 지원한 프로젝트가 나의 관심사와 맞을지 알기 위해 물어봤을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면접 때 받은 여러 질문들 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저 질문으로 인해 내가 한층 더 깊이 나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감사하게도 원하던 랩의 지원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과학고에서 학기마다 한번 씩 했던 과제연구를 제외하고는 대학에 온 뒤로 이렇다할 진짜 연구 경험이 없던 터라, 학부 졸업 전에 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 시작한 랩인턴이었고, 감사하게도 제일 관심이 있고 원하는 연구실에 합격을 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인턴 기간 동안 나는 Human-AI Interaction(HAI)와 관련된 프로젝트 연구를 진행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연구이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피하지만, 몇달동안 Literature Survey만 하면서 논문과 씨름을 하며 논문 찾는 법도 솔직히 잘 알지 못했던 내가 전반적인 연구 흐름을 파악을 하고 레퍼런스의 꼬리의 꼬리를 물고 볼 수 있는 방법 등 터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동시에 내가 HCI 분야 중에서도 하고 AI 시대에 사용자와의 인터랙션을 하는 방향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Human AI interaction을 연구하고, 앞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AI의 활용을 User 중심으로 이해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10년 전에 전에 유망직종이 현재 최고 직종이 아니듯, 10년 뒤에는 지금처럼 인공지능, 딥러닝이 여전히 가장 핫할 것이라고 자신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나 역시도 지금의 생각이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인공지능은 마치 스마트폰과 같이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 것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개발자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매일매일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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