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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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이 많고, 집에만 있기엔 날씨가 참 좋은 5월. 창밖으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과 햇살에 반짝이는 풀들을 보면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휴대폰에 깔아둔 여행 앱에서 제주도 항공 특가 알림이 뜬 순간 내 머릿속에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고, 저녁에는 흑돼지, 싱싱한 회를 즐기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코로나 19로 가장 크게 바뀐 일상 중 하나는 공간의 제약을 비약적으로 넘어선 것이 아닐까. 공간의 변화와 재구성으로 인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출근이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1년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세상은 이제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원격으로 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특히 개발자는 인터넷과 맥북이 있다면야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코로나 이전에도 있던 단어인, 디지털 노마드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지칭한다. 테크놀로지를 통해 어디에서나 업무를 처리하고, 유목민과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나는 홀린 듯 캘린더를 켜 일정을 체크하고 당장 2주 뒤의 항공편을 예매했다. 비수기 중에서도 비수기였기 때문에 왕복 2만 원대에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여행을 갈 때 동선과 시간, 그리고 방문할 장소가 문을 닫았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B와 C까지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서 준비해놓는 계획적인 성향이지만, 이번 만큼은 유연하게 다녀오고자 의식적으로 계획하는 것을 자제하려고 했다. 하루 이틀 전쯤에 갈 만한 곳을 찾고 북마크를 하고, 트리플이라는 어플을 이용해 하루 전 쯤 동선을 간단하게 짜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짐도 최대한 간단하게 했다. 미니멀리스트보다는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나였지만, 이번에는 딱 맥북과 읽을 책, 노트가 들어 있는 백팩을 매고 옷도 며칠 돌려 입을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챙겼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주에서 5일간의 시도하는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시작했다.

첫 발을 내딛은 장소는

맑고 아름다운 바다를 감상하기 위해 제주도 서부(애월-한경)를 찾아갔다. 볼거리가 더 많아보이는 서귀포나 동부쪽을 선택하려다 업무시간이 끝난 후 바다 위로 떨어지는 노을을 감상하기 위해 서부를 택했다. 금능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1인실을 잡아 3일간 지냈는데 주택을 개조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 숙소는 여타 게스트하우스처럼 밤마다 왁자지껄한 파티를 열거나,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의 숙소는 아니라서 만족스러웠다. 혼자 조용히 즐기다 가기 위한 내게 딱 맞는 위한 곳이랄까.

나름 한적한 장소에 우두커니 서있는 게스트하우스지만, 바로 앞에 편의점도 있고 걸어서 4분 거리에 금능해수욕장, 협재해수욕장도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숙소 위에는 루프탑과 공용 식당이 있어서 밤에 맥북을 들고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5일간 금능을 중심으로 한경-애월-제주시내 부근을 다녔다.

때로는 바다를 보며, 때로는 시원한 밤하늘 아래서 맥북만 있다면

업무와 카페

디지털 노마드 실현을 위해 최소로 필요한 것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로 마음먹는 순간 일과 여행 중 우선시 해야하는 것은 일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유명 스팟을 구경하는 것은 일이 동시에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다. 막연히 노트북만 달랑 들고 여행하며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이들이 쉽게 간과할 만한 점이 있다. 오피스나 집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의지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타지에 오게 되니 낯선 환경,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기분이 붕 뜨고,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그랬고, 이번 경험을 통해 이 점을 가장 크게 배웠다. 이동하는것도 힘든데 일까지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더더욱. 단순한 휴양을 하면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환상은 미리 접는게 좋으리라. 밸런스 조절을 못하면 어중간하게 일과 휴식 모두 놓칠 수 있다.

직접 부딪혀보면 깨닫게 되지만 최소한 인터넷 연결이 되는 조용하고 한적한 공간을 찾는 것부터가 큰 난관이다. 창의력을 요하는 직업이나 프리랜서의 경우 다를 수 있지만 나와 같이 정규 업무시간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외에도 미팅시간 조정, 커뮤니케이션 문제, 틈틈이 업무 메일 확인 등을 해야 할 일이 많다.

일을 하기 위한 적당한 카페를 찾는 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고 힘든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롭다. 우선 오전마다 있는 화상미팅을 위해 소음이 적고 음악소리가 작아야 한다. 인터넷 보급이 잘되어있는 우리나라 답게 인터넷 연결문제를 걱정하지는 않지만 콘센트가 구비되어있고, 장시간 앉아있을 수 있는 곳 이어야 한다. 인스타에 나오는 유명 카페들은 웨이팅이 있기 때문에, 웨이팅 없이 제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이 모든 조건들을 만족하는 ‘일을 하기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서울에는 이미 공유오피스와 같이 일을 하기 위한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는 곳들이 많아 혹시 제주에도 그러한 장소가 있을 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제주에도 코워킹 스페이스들이 있었다. 제주 한달살이 등의 이유로 나처럼 일을 하러 제주에 왔을 경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는 것 같았으나 보통 제주 시내에 위치하여 내가 지내는 곳과 멀기도 하고, 혼자 일하는 내게는 큰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집중해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야할 일이 있다면 고려해볼 법 해보인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다음 날 아침부터 답사 느낌으로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스타벅스(개인적으로 음악소리가 너무 크고 사람이 많아 별로였다), 유명카페 등을 이곳 저곳 가보며 일이 잘 될 만한 곳을 찾았다. 하이엔드 제주, 팩토리스토리, Anthracite 한림, 잔물결 등 미리 조사를 해서 찾아간 곳도 있고, 지나가다 발길이 닿는대로 들어간 곳도 있었다. 바다가 보이고 풍경을 볼 수 있던 카페들을 5일간 많이 전전했는데, 일을 하기 좋았던 곳도 있었고 다소 힘들었던 곳도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곳은 조용히 책을 한권 완독할 수 있었고 글을 쓸 수 있었던 한담 해안산책로 근처 팩토리스토리였다.

의외로 인터넷이 말썽인 경우가 많았다. 연결 품질이 좋지 않아 회의가 끊기거나 인터넷 연결 자체도 깔끔하게 되지 않아 몇번을 시도해야했던 곳도 있었다. 버스에서도 제주공공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제주인데, 업무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에 연결 오류가 떠서 방해가 되는 경우 참 당황스럽다. 동시에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떠올렸다. 재작년 탄자니아 아루샤에서처럼 3G 인터넷는 커녕 2G밖에 접속도 간당간당한 환경에서라면 원격으로 일을 하기가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다.

그 외에 디지털 노마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꿈꾸고 있다면, 관련한 많은 조언들이 있으니 먼저 한번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인지 확인해볼 것을 추천한다.

쉬어가는 시간들

나름의 구상으로 공휴일이 낀 주에, 그 전날은 휴가를 낸 것은 하나의 안전장치였다.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낯선 환경에서 자칫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경우 업무에 폐를 끼치고 일정이 꼬이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미팅 일정 등에 지장은 업되 스스로 유연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 첫 디지털 노마드 중 나올 수 있는 여러 실수에도 리스크는 줄이고 경험과 배움은 얻어갈 수 있었다.

휴일을 포함한 업무 시간 외에는 금오름에 올라보고, 해안 산책로와 올레길 코스 일부도 혼자 걸어보며 제주를 날 것 그대로 느껴보고자 했다. 제주까지 왔는데 맛있는 것을 먹고 가야하니 우무 푸딩도 먹어보고, 고기국수 등 유명 맛집도 웨이팅을 최대한 안하기 위해 시간을 딱 맞춰서 찾아갔다.

(번외로 지도앱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일상 속에서도 자주 사용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특히 더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바로 지도일 것이다. 네이버 Mobile Maps 부서에서 일을 하는 중이라 그런지 이번 여행에서 특히 이 지도 앱에 대한 고찰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할 수 있었다. 카카오 본사가 제주에 위치해 있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주여행에는 카카오맵을 추천한 이유가 궁금했다. 원래 네이버 지도를 주로 써왔는데, 이번에 제주 여행을 하면서 카카오맵을 써오며 UX가 상당히 편리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돌아와서 멘토님들과 커피 한 잔 하며 알게 된 부분들이 있지만, 내부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만을 밝힌다.

양 측의 장단이 있다. 네이버지도는 포털이 잘 되어있는 만큼 블로그, 카페와의 연결성이 좋아 가고자 하는 장소(POI, Point of Interest)의 리뷰와 사진 퀄리티가 훨씬 방대하고 좋다. 카카오맵은 직관적인 UX와, 이번 여행에서 정말 유용하게 사용했던 승하차알림 기능이 있어 버스 안에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한번도 놓치지 않고 제 때 내릴 수 있었다. 네이버 지도도 버스도착정보를 제공하긴 했으나 시간 정확도가 카카오맵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때문에 자세한 리뷰나 사진들을 보고 싶을 때에는 네이버지도를 켜게 됐고, 길을 찾을 때에는 카카오맵을 켰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직무가 지도 중에서도 대중교통이나 UI/UX는 아니지만 직접 실제 사용자의 입장에서 경험을 하며 네이버지도가 사용자들에게 더 사랑받기 위해 보완해야할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언젠가 이 두 지도의 사용자 경험 비교 글을 써야겠다.

마무리하며

일이 끝나고 다채로운 제주의 풍경을 즐길 수 있었던 5일

디지털 노마드로써의 5일간의 생활은 신선했다. 타지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고, 자유로우면서도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며 원격으로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시작했다. 결과적으론 처음이기에 잘 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아쉽고 잘 안된 점도 분명 있었다. 모니터로 눈이 피로해질 때면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봤고, 몸이 찌뿌둥해질 때쯤이면 해안의 올레길을 걸었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개인적인 일들을 생각하며 사색을 즐길 수도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외로움이 조금씩 커졌던 3일차 밤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로운 사람들과도 짧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막상 집에 돌아오니 또 마음이 편하고 아늑하다. 하루에 2만 보 씩 걸어 다니며 타지에서 일하려고 했던 것도 있고, 몇 년간 나에게 맞게 집중하고 쉴 수 있도록 변형된 공간이 바로 이 곳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이번에 잘 안 된 점들은 다음 여행을 더 잘하기 위한 가르침이 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또 한번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훌훌 떠날 준비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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